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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미술

by karan 2021. 8. 2.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아쉽게도 남은 것이 적다. 처음에는 왕실에 소속된 화가들만 정식 장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다가 차츰 문인들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송나라(960~1279년) 때 중국 회화는 전성기를 구가했고, 명나라(1368~1644년) 화가들도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중국은 종이를 처음으로 발명했다. 종이는 그림을 그리는 데 좋은 재료였다. 그림을 비단에다 그리는 일도 있었다. 비단은 선사 시대부터 중국에서 생산된 귀한 재료였다. 중국 화가들은 두루마리 그림을 많이 그렸따. 다 그리고 나면 긴 화폭을 동그랗게 말아서 보관했고, 구경할 때는 천천히 펴면서 한 토막씩 나누어 감상했다.

 

중국은 도예가 크게 발달했다. 도자기뿐 아니라 찻잔과 연적 같은 일상용품도 가마에서 구웠다. 중국 도자기는 재질이 단단하고 무늬가 정교해서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눈 온 뒤에 갠 계곡 풍경

당인(1470~1524년)

대만 타이페이 국립 박물관

그림 하단에 사람들이 오글거린다. 계곡 눈밭을 헤치고 구불구불한 길을 오른다. 먼 산봉우리와 나무들은 자욱한 안개 자락에 몸을 숨기고, 은은한 정취가 산허리를 밝게 감싼다. 문인 화가 당인은 두루마기 그림 위쪽에 시를 한 수 적어 넣었다. 시구의 글자 배치가 그림하고 잘 어울린다.

 

 17~19세기 일본에서는 천황을 등에 업고 군벌 독재자 도쿠가와가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호화스런 능묘를 지은 걸로도 유명하다.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목판을 사용해서 그림을 두 가지 색채로 찍어내는 판화 기술이 크게 발전하고 두루 퍼졌다.

 

파리에서 일본 판화를 본 인상파 화가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명한 색채에다 과감한 단축법을 구사한 그림들이었다. 구성이 대담했고 불필요한 세부를 크게 생략한 일본 판화는 유럽 화가들에게 새로운 미술의 눈을 뜨게 했다. 판화가 브라크몽이 파리에서 일본 판화를 발견한 건 1856년이었다. 그는 도자기를 싼 허드레 포장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럽에서 볼 수 없던 아름답고 신선한 미술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키로카미 산의 키리후리 폭포에 감탄하는 나그네들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

폭포 절경 연작, 1832년께

화가와 판화가로 활동했던 호쿠사이는 18~19세기 일본에서 제일 이름난 예술가다.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어느 하나 뒤짐 없이 상상력이 뛰어났다. 큰 재산을 모았으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 이름도 서른 차례 넘게 바꾸었다. 그때그때 필체를 바꾸어가면서 색다른 작품들을 쏟아낸 괴력의 화가였다. 산수 그림들이 특히 볼 만하고, 일본은 물론 유럽에서도 크게 이름을 날렸다. 폭포 절경 연작에서처럼 장려하고 환상적인 소재를 대담한 구성으로 능숙하게 다루었다.

 

아시아는 오랜 역사와 넓은 지역을 포함하는 큰 대륙이다. 아시아 미술을 간단히 요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대 그리소 로마 문화가 미처 움트기도 전에 중국과 인도에서는 이미 독자적인 문화가 꽃피었다. 아랍 전통도 중세 유럽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이슬람 미술은 다양한 형태로 지중해 문화권과 아시아 지역, 아프리카에 두루 확산되었고, 아나톨리아에서 일본, 중국에서 자바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고유의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다. 유럽 문명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1000년 이후 중앙아시아가 크게 일어나 유럽까지 발을 뻗쳤고, 이와 더불어 아랍어가 유럽의 언어 권역에 파고들었다. 극동 지역에 형성된 독자적인 문화는 근대 이후 유럽 미술에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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